제로 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계층별 접근 격차 분석

mymusicblog 2025. 7. 16. 09:00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은 쓰레기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철학적 실천으로, 환경을 생각하고 자원 순환을 생활화하자는 시민 주도의 운동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 확산하면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바로 계층에 따른 실천 접근성의 격차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제로 웨이스트지만, 실제 생활에서 이를 꾸준히 실천하기 위해서는 시간, 비용, 정보, 주거 환경 등 다양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포장재 대신 리필제품을 구매하고, 다회용기를 세척하여 재사용하며,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려면 추가적인 시간과 노동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리필 매장이 근처에 없거나 무포장 매장을 이용하려면 교통비나 이동 시간을 부담해야 하며, 친환경 제품 자체가 일반 제품보다 비싼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실천이 가능한 환경 자체가 중산층 이상 가구에 더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은,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계층 간 실천 격차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접근하는 계층적 격차

 

즉, 환경을 위한 실천이라는 의도가 오히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윤리적 특권’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으며, 실제로 일부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환경 실천’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우선이기 때문에, 제로 웨이스트는 먼 이야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실천의 ‘의지’만으로 제로 웨이스트를 평가하는 것은, 그 이면의 구조적 조건을 무시한 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서 나타나는 주거·소득 기반의 장벽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접근 격차를 더욱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요소는 바로 주거 환경과 소득 수준입니다. 많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 항목은 ‘분리수거 공간’, ‘세척을 위한 설거지 공간’, ‘대체용품을 둘 여유 공간’ 등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소형 임대주택이나 고시원, 원룸 등에서는 기본적인 분리배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이며, 냉장·냉동 보관 공간이 협소해 음식물 보존도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리필을 위한 다회용기 보관, 천 기저귀 세탁, 재사용 도구 준비 등은 현실적으로 큰 제약을 받게 됩니다.

 

소득 역시 결정적인 장벽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제품은 일반 상품에 비해 단가가 높은 경우가 많고, 재사용할 수 있는 고급 내구성 제품은 초기 구매 비용이 크기 때문에, 단기 생계에 집중해야 하는 계층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일회용 생리대보다 비싼 생리컵이나 천 생리대, 일반 비누보다 가격이 높은 수제 샴푸바, 저렴한 일회용 포장식보다 더 비싼 포장 없는 로컬 식재료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저소득층일수록 정보 접근성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필요한 실용 정보는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블로그를 통해 퍼지는데, 디지털 정보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비대칭적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환경 실천이 정보, 공간, 비용의 삼중 장벽으로 인해 계층별로 현실 가능성이 달라지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으며, 이는 단지 실천의 문제가 아닌 환경 정의(환경권의 평등성) 측면에서 심각한 정책적 사안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정책과 인프라의 불균형 구조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계층 간 격차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정책 설계와 공공 인프라의 불균형으로 인해 확대되기도 합니다. 현재 국내 제로 웨이스트 관련 정책은 대부분 도시 중심, 중산층 접근성이 좋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구나 마포구 등 문화 소비 수준이 높은 지역에는 리필 매장, 무포장 상점, 친환경 카페, 제로 웨이스트 부엌 공간 등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저소득 밀집 지역이나 농산어촌, 비 도심권에는 이러한 기반 시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공공시설에서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도 지역마다 격차가 큽니다. 일부 지자체는 다회용기 순환 시스템, 무포장 공공 시장, 공용 세척소 등을 운영하며 환경 실천의 사회적 접근성을 높이고 있지만, 다수 지역은 여전히 분리배출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저소득층 대상의 환경교육이나 실천 지원 사업은 미비한 실정입니다. 특히 환경부가 제시한 ‘탄소중립 생활 실천 지원’ 정책 또한 중위 소득 이상 가구를 주요 타깃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환경 실천의 혜택이 불균형하게 분포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제로 웨이스트는 ‘개인의 윤리적 실천’이 아니라,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환경 특권화’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사회 전반이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려면, 환경 실천도 교육, 교통, 문화처럼 ‘공공 인프라’의 일부로 제도화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계층 간 실천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노력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포용적 확장을 위한 제언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지속 가능성과 환경 윤리를 담고 있는 만큼, 이 운동이 ‘누구에게나 실현할 수 있는 운동’으로 확장되기 위한 제도적·문화적 개입이 시급합니다.

 

첫째, 환경 실천에 대한 ‘비용 부담 경감’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친환경 제품 구매 시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 지원, 다회용기 보증금 면제, 리필제품 할인 제도 등 소득 조건에 따른 차등 지원 구조를 마련하면 접근성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둘째, 공공영역에서의 제로 웨이스트 인프라 확대가 절실합니다. 지역별 리필 스테이션, 무료 다회용기 대여소, 다회용기 회수·세척 시스템 등을 공공기관이 주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특정 계층에 치우치지 않는 실천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특히 교육청, 지자체, 주민센터 등 기초 행정 단위에서 실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실질적인 확산에 효과적입니다.

셋째, 제로 웨이스트 교육의 내용과 접근 방식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환경 교육은 학교나 온라인 중심이며, 그 내용 또한 중산층 소비자 중심의 실천 정보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 밀착형 실천 정보, 예산 제약이 있는 가정을 위한 실용 전략, 다문화 가정이나 장애인을 고려한 환경 접근권 교육 등으로 다양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천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 개인에게 ‘실천 의지 없음’이라는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는 문화 형성이 필요합니다. 제로 웨이스트는 철학이자 방향이지, 완벽함을 요구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실천을 잘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조건 안에서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사람이 환영받는 환경 실천 문화가 형성될 때, 제로 웨이스트는 특정 계층의 운동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가는 환경 정의의 실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서 ‘시간 자본’의 격차가 만드는 또 다른 장벽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계층 간 격차를 논할 때 간과되기 쉬운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시간 자본(time capital)’의 불균형입니다. 환경 실천은 물질적 비용만 아니라 시간을 들여 계획하고, 선택하고, 반복해야 하는 행위입니다. 포장 없는 식료품을 사기 위해 리필 상점을 찾고, 다회용기를 챙기고 세척하며, 직접 만드는 세제를 준비하려면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실천을 실행할 수 있는 구조적 격차가 존재합니다.

 

특히 비정규직, 돌봄 노동자, 다자녀 가정, 장시간 노동자처럼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계층은 환경 실천을 위한 시간 확보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습니다. 이들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존이 먼저인 삶의 구조 속에서 시간 자본을 투입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유연한 근무 시간과 생활의 여유가 확보된 계층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통합하며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쓰는가?’가 아니라, 누가 언제 그 실천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 속에 있느냐는 문제로 연결되며,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시간 분배 정의와도 직결됩니다. 따라서 환경 정책 역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시간 접근권’까지 고려한 생활 실천 설계가 필요하며, 이는 진정으로 포용적이고 평등한 제로 웨이스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심층적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