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제로 웨이스트 영화 제작 프로토콜
지금까지 영화 산업은 기술 혁신과 창의성 중심의 발전을 이루어왔지만, 그 이면에는 막대한 환경 부담이 숨어 있었습니다. 한 편의 상업 영화가 제작되는 동안 발생하는 쓰레기양은 상상 이상이며, 세트장 건설, 조명 사용, 차량 이동, 다량의 일회용품 소비까지 고려하면 단순히 문화 생산을 넘어서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 활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플라스틱 식기, 비닐 랩, 배달 음식 포장, 일회용 커피 컵, 임시 세트 폐기물은 대부분 소각 또는 매립되고 있으며, 촬영 한 시즌 동안 수십 톤의 폐기물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Zero Waste Cinema)’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단순한 친환경 촬영을 넘어서, 제작 준비 단계부터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고, 자원을 재활용하며, 순환할 수 있는 영화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최근에는 유럽과 북미에서 제로 웨이스트 프로토콜을 따른 제작사들이 늘고 있으며, 영화제 출품 기준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평가 요소로 반영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친환경 제작을 시도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으며, 저 역시 환경 NGO와 협업하여 제로 웨이스트 촬영 현장을 직접 기획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과 실제 사례, 적용할 수 있는 프로토콜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영화 제작을 위한 사전 기획 단계의 전략 수립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의 실천은 촬영 현장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구조적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우선 영화 제작 프로듀서나 라인 PD가 전체 제작 프로세스를 친환경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촬영지 선택부터 에너지 자급이 가능한 로컬 지역을 우선 고려하고, 장비 이동 거리와 숙소 접근성을 함께 계산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획이 가능합니다.
또한 친환경 조달 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트 소품, 의상, 식자재, 메이크업 제품 등은 모두 친환경 인증 제품이나 재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하며, 구매가 아니라 대여나 공유로 대체할 수 있는 구조를 사전에 협의해 두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문서화하고, ‘지속 가능성 점검표’를 모든 부서에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촬영 스태프와 배우들에게는 사전 교육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 개념을 전달하고, 실천 의지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경험한 한 단편 영화 프로젝트에서는, 촬영 전 전체 회의 시간에 제로 웨이스트 브리핑을 진행하고, 개인 텀블러, 식기 세트, 다회용 식사 용기 등을 각자 준비하도록 하였는데, 이 자체가 촬영 팀 전체의 협업 의식을 강화하는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듯 기획 단계에서의 친환경 전략 수립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정체성과 메시지를 강화하고, 이후의 실천 단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기반이 됩니다.
제로 웨이스트 촬영 현장을 위한 시스템 구축과 실천 방안
촬영 현장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가장 많은 폐기물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단계입니다. 조명 장비, 음향 시스템, 발전기, 야외 세트 설치, 현장 식사, 분장 및 의상 교체 등 다양한 활동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를 위한 촬영 시스템은 단지 ‘쓰레기통을 분리 배치’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장 전체가 친환경 루틴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선 전기 사용을 재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능한 태양광 발전기를 활용하거나, 로컬 전력과 연결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여 디젤 발전기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조명 장비 역시 기존의 고출력 장비 대신 저전력 LED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전력 소비를 절감하면서도 고품질의 촬영이 가능합니다.
식사 시스템의 전환도 핵심 영역입니다.
보통 촬영 현장은 배달 도시락이나 일회용기 식사로 운영되지만, 제로 웨이스트 촬영에서는 현장 조리식 또는 리필형 식판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스태프 전원은 개인 식기를 지참하거나, 현장에서 다회용 식기 세트를 대여·회수하는 시스템을 통해 폐기물 없이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한 다큐멘터리 촬영팀은 리필 도시락 업체와 협업하여, 3개월간 촬영 동안 일회용기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촬영 장면에서 사용하는 소품과 의상 역시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는 분야입니다. 이에 대해선 지역 재활용 센터나 빈티지 가게와 제휴하여 소품을 대여하고, 촬영이 끝난 뒤엔 기부나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반납 체계를 만드는 것이 실천 방안이 됩니다.
특히 세트장의 경우, 기존에는 한 번 설치 후 철거되는 방식이었다면,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에서는 모듈형 재활용 세트를 사용하여 여러 작품에서 공유하거나 분해 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현장 내에는 반드시 분리배출 스테이션과 실시간 체크 담당자를 배치하여, 음료 캔, 종이,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포장 등 모든 폐기물을 정량화하고 처리 내용을 문서화해야 합니다. 이 데이터는 이후 보고서 작성 및 친환경 인증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제로 웨이스트 후반 제작과 배급 전략
많은 이들이 간과하지만, 후반 제작 단계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매우 중요합니다.
편집실, 음향 믹싱 스튜디오, 컬러 그레이딩 시설 등은 대부분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공간이며, 인쇄물과 USB, 홍보물 등의 제작에서 수많은 자원이 낭비되기도 합니다.
우선, 후반 작업에 사용하는 장비들은 최대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으로 선택하고, 장시간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 타이머나 절전 모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각 부서 간의 자료 공유는 USB나 인쇄물이 아닌 클라우드 기반 공유 플랫폼을 활용함으로써 불필요한 물리적 자원 사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마케팅 단계에서는 디지털 포스터와 온라인 홍보물 중심의 전략이 효과적입니다.
특히 종이 전단, 홍보물, 기념 상품 제작은 폐기 가능성이 높으므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생지 또는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제작하되, 수량을 최소화하고 온라인 QR코드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영화제 출품 및 시사회 행사에서도 제로 웨이스트는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한 독립영화 상영회에서는, 다회용 물컵과 포스터 교환권, 개인 텀블러 할인 시스템을 운영하여 관객들에게 실천을 유도했고,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행사장에서는 플라스틱병 대신 정수기를 설치하고, 디지털 초청장과 좌석 시스템을 도입해 종이 쓰레기를 90% 이상 절감한 바 있습니다.
배급 단계에서도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소규모 지역 극장과의 협업을 통해, 로컬 중심의 지속 가능한 배급 경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대규모 유통보다 더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으며, 지역 커뮤니티와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실제로 제로 웨이스트 영화만을 상영하는 소형 영화제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의 국제 사례와 향후 제도적 도입 가능성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의 개념은 아직 한국에서 널리 확산한 단계는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체계적인 기준과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Green Production Guide(GPG)나 영국의 Albert Certification은, 영화 및 TV 제작 시 탄소 배출량, 쓰레기 발생량, 자원 순환율 등을 기준으로 친환경 인증 등급을 부여합니다.
2022년 칸 영화제에서는 처음으로 ‘Green Palm’이라는 환경 부문 상이 신설되었고, 넷플릭스, HBO, 디즈니 등 글로벌 제작사들도 내부적으로 제로 웨이스트 기준을 도입해 스태프 교육, 촬영장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문화예술 산업의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한 기금 지원과 세제 혜택도 제공 중입니다.
국내에서는 서울 환경영화제를 중심으로 일부 친환경 영화 제작 사례가 축적되고 있으며, 방송사 내부적으로는 스튜디오 폐기물 관리 시스템이나 친환경 촬영지 선택 기준이 점차 마련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에 대한 정책적 지침이 부재한 상황이며, 이를 위한 산업계와 공공기관의 협력이 절실합니다.
앞으로는 영화진흥위원회(KOFIC)나 지역영상위원회에서 ‘지속 가능 영화 제작 지침’을 공식화하고, 제로 웨이스트 실천 프로젝트에 대한 보조금 지원, 기술 교육, 친환경 마케팅 연계 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또한 영화 제작자 협회나 연출가 조합 등 현장 중심 단체에서 자율적인 실천 선언문을 도입한다면, 보다 빠르고 자율적인 확산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은 시작 단계이지만, 제로 웨이스트 시네마는 단지 친환경 영화 제작이 아닌, 영화라는 예술과 산업이 미래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필수 조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